마라리 역사


 약 20만 년 전부터 시작된 땅 안의,
 마을은 이제 150년 되어가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마라리는 이렇게 자라왔습니다

아이들이 태동에서 걸음마하며 자라듯, 마라리 또한 하나의 생명체처럼 시간을 지나며 형성되어 왔습니다.

Step 6. 스스로 기준을 세우다.


  • 2033. 마라도 입도 150주년(현재, 최남단비 리모델링 추진)
  • ...
  • 2027. 해수담수화시설 증설(900톤/일)
  • 2026. 마라리 10개년 계획 수립(2027~2036)
  • 2026. 발전소 직원 숙소 신축
  • 2026.2.세계유산본부 학술조사지
  • 2025. 주민참여예산 확보하여 마라도지 출간, 마라도 생태관광 홈페이지 리뉴얼
  • 2025.11.13. 탄소중립 선도마을 선포식
  • 2025.11.1 해수통합취수관 운영시작
  • 2025. 성게 사라짐: 해녀의 성게 판매 중단 
  • 2025. 먼섬법 관련 항구건설 신청(500억)
  • 2024. 마라리마을회 규약 개정 완성(2년간 논의)
  • 2024. 해녀 뿔소라 숙회 판매
  • 2024. 도로 교체공사(1차: 해녀촌~신작로)
  • 2024. 대합실 리모델링 완공
  • 2023. 문화재청 전동카트 고시 변경(1가구 1대)
  • 2022.2.23. 마라로 도로표지병 설치
  • 2023. 전세계 희귀종 뿔쇠오리를 위해 , 집고양이 외의 길고양이는 출도, 세계유산본부의 약속 (자연사까지 보호, 위해생물 방역, 천연기념물 마라도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계획 수립) 전제
  • 2022. 문화재청 전동카트 고시 변경 신청
  • 2022.6. 마라도등대 현건물 신축
  • 2022. 마라리마을회 자치위원회 구성(기존 개발위원회의 전면개편과 규약 개정 착수)


Step 5. 넘어지고 일어서다.


  • 2019~2021. 전세계 코로나 감염기간. 마을행사 중단
  • 2019.3.29. 마라도협동조합 설립
  • 2018. 감태 사라짐
  • 2018.10.마라도등대 신축 착공 (공기압출식 무신호 사라짐)
  • 2018.7. 마라도등대 앞 이어도 모형도 설치
  • 2017.12. 마을 수도관 교체공사
  • 2017. 가수 김건모, 마라도짜장면집 모두 방문(관광객 폭증. 2017년 61만명 방문)
  • 2017? 미역 사라짐: 기후변화 및 기후위기를 체감 시작
  • 2016.11.14. 마라어촌계, 가파어촌계에서 분리
  • 2016. 마을 지중화 전기선 교체공사
  • 2016. 마라리 10개년 계획(~2026)
  • 2016.2. 마라분교 휴교: 마지막 졸업생 김영주
  • 2016. 송악산102호 취항
  • 2017. 모슬포북항에서 운진항으로 이전
  • 2014. 오하수관 공사
  • 2014. 송악산 유람선이 마라도가는여객선으로 (유람선에서 여객선으로 등록)
  • 2014. 아름다운섬나라의 삼영해운 흡수합병
  • 2014. 마라도 항구확장공사 불허(2015년 축소 부분 공사)
  • 2012.5. 대정파출소 마라치안센터 개칭
  • 2011. 마라도전동카트 고시 제재(10여대 이하)

Step 4. 이름을 갖다.


  • 2010. 마라도 첫 홈페이지 개설
  • 2008. 마라도성당 개방 시작
  • 2007. 마라도 첫 편의점(GS25) 입점
  • 2007.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
  • 2006. 태양광발전시설 완공(150KW)
  • 2005. 마라도, 청정보호구역 지정
  • 2005. 전동카트(골프카) 입도: 상업용
  • 2005. 마라도등대 앞 타임캡슐(2015년 개봉)
  • 2004. 해수담수화시설 준공(50톤/일)
  • 2004. 송악산101호 취항
  • 2004. 등대 등명기를 프리즘식으로 교체
  • 2004. 경로당 건립
  • 2001. 환경부 자연환경조사
  • 2000. 등대에 위성항법보정기준국 설치
  • 2000.8.2. 마라도성당 축성식(민성기 요셉 신부)
  • 2000.7.19. 국가 천연기념물(제423호)로 지정

Step 3. 딛고 서다


  • 1998.3.16. 풍력발전기 완공(50KW 사업비 3억7천만원)
  • 1998.2.26. 마을 진입로 제주가공석 포장
  • 1998. TV광고(017신세기이동통신-짜장면) 
  • 1997.10.5. 마라분교장 교실 신축
  • 1997.8.19. 마라해양군립공원으로 지정
  • 1997.8.2. 공중전화 1대 설치 및 개통
  • 1996.5. 파출소 현위치 건물 신축
  • 1996. 송악산2호 취항
  • 1995.4. 통일기원비(육군 9506부대)
  • 1994.11.19. 마라도 기원정사 낙성
  • 1994.9.30. 마라도지(1호) 발간
  • 1994. TV광고에 마라도 노출(삼보컴퓨터)
  • 1993.4.1. 마라도 비지정관광지 지정(수수료 1,000원 징수)
  • 1993. 발전기 2대(42KW*2)
  • 1992.12.3. 쓰레기소각장시설(90kg/h)
  • 1992. 태양광 발전시스템(30KW)
  • 1991. 마라도 조류조사 시작
  • 1991.7. 대정파출소 마라출장소 개칭
  • 1991. "최남단 마라도 푸른 가꾸기"사업

Step 2. 반응하다.


  • 1991. 송악산1호 취항
  • 1988. 9.13.가파도-마라도 해운업체(삼영해운1호) 여객선 등록 
  • 1988. 마라도등대를 항로표지관리소 개칭
  • 1988.8.29. 자리덕선착장 시설준공
  • 1988.2.27. 마라자가발전실소 건립(10KW 밤에 비로소 전기불 켤 정도됨)
  • 1987.10. 기원정사 창건
  • 1987. 등대에 태양광 발전장비 설치
  • 1987. 마라도등대 신축
  • 1986.7. 한국통신 고산전화국 마라분기국 설치
  • 1985.11.28. 최남단비 세워짐(남제주군): 비석에는 10월2일로 새겨있다.  가로 125, 세로 153, 높이 292cm. 한국의 유명한 서예가의 서체로"대한민국최남단"이라고 새겨졌다.
  • 1984.마라교회 설립(방다락 목사)
  • 1983. 자가발전기(10KW)
  • 1983. 마라도 입도 100주년
  • 1981.4.1. 마라리 행정리 분리(가파리에서)
  • 1980년대 초. 경운기 들어옴
  • 1979.3. 성멀쪽으로 다리 놓음
  • 1977. 마라도 발전시설 준공
  • 1977.11.26. 마라분교의 자석식 무선전화(마을도 사용)
  • 1975. 첫 전기불(경운기 엔진, 5KW) 
  • 1974.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
  • 1974.7. 경찰종합초소

Step 1. 태동하다.


  • 1973.12.27. 장학선 세일호 취항(도항선, 용선)
  • 1972. 마라분교 현위치 교사 신축
  • 1965. 마라도 향약 제정
  • 1962. 마라분교 개교(마라도 최초 공공기관)
  • 1958.8.31.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 개교
  • 1956.7.8. 대정면이 대정읍으로 승격
  • 1955. 마라도등대가 유인등대로 운영 시작
  • 1946.8. 남제주군 대정면 가파리 소속
  • 1940. 마라도등대 전신취급소 설치
  • 1915.3. 마라도등대 첫 설치(무인등대)
  • 1914. 신작로 표기 등장: 마라도의 유일한 공식 도로는 신작로~등대
  • ? 김씨가 마라도를 개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슬포 주민이었던 나씨, 김씨, 이씨, 강씨, 한싸, 황씨, 심씨 등이 마라도로 이주하여 화전 시작
  • 1883.(고종20년) 마라도에 첫 이주민 (대정고을의 김성오가 김규임 현감에게 섬 개척 건의→계미년, 심현택 제주 절제사 겸 방어사가 마라도 개척 인가): 가파도는 1842년 입경임으로 41년 지난 때
  • 수백 년 전, 모슬포에 살던 이씨 부인이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움. 자신의 아기를 돌보는 애기업개로 데리고 있다가, 마라도에 물질하러 갈때 테우에 태우고 감. 전복채취하다가 날씨 나빠져 마라도에 갖힘. 몇 일을 그러다가 여러 명 꿈에 애기업개를 두고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음. 애기업개만 남겨두고 떠났다가 3년 후에 갔더니 뼈만 남음. 그 자리에 당을 세워줌. 매달 7, 17, 27일에 제를 지냈음. 그 애기업개가 지금은 할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할망당이라고 함


🔸 섬에 기대어, 날숨 쉬던 시간들  🔸 
- 바다 끝, 남달리 돌에 새긴 기록들.  섬에 얹혀 산 세월에서 섬을 선택한 시간으로 -

💠 마라도의 역사는 특정한 사건이나 연대기로 설명되기보다, 이 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통해 이해되는 역사입니다. 땅은 작고 바다는 거칠었지만, 마라도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머물며 생활을 이어온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정복이나 개척의 기록이 아니라, 자연 조건에 응답하며 반복해 온 삶의 선택들이 쌓인 시간에 가깝습니다. 마라도는 제주 본섬과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외부와의 왕래가 늘 제한적이었던 이 환경은 불편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섬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조정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결과 마라도에서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 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이 섬에서의 삶은 풍요를 전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농사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다에 의지해 살아왔고, 어업과 해녀의 물질은 오랫동안 마라도 생계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러한 생활 조건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무리한 확장보다는 지속을 중시하는 태도를 형성해 왔습니다. 마라도의 역사는 외부의 변화에 단절되지 않았지만, 그대로 휩쓸리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조건이 들어올 때마다, 이 섬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자연 조건에 맞게 조심스럽게 조정하며 대응해 왔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과정 자체가 마라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 또한 마라도는 계절과 바다의 변화를 비교적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 섬에서 관찰되는 자연의 변화와 생활의 경험은, 오랜 시간 축적된 생활사로서 기록될 가치가 있습니다. 마라도의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라도는 섬에서 살아남은 곳이 아니라, 섬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지금도 이어지는 곳입니다. 이 조용한 역사는 앞으로도 이 섬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갈지를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남을 것입니다.


마라도 문화


마라도에 애기업개는 버려졌고, 하염없이 바라기만 했습니다.
이제 마라도인은 버려진 것들을 끌어안고, 위로합니다.


마라도지(제2호)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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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지(제1호)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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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의 문화와 신앙, 그리고 공동체


🔸 섬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섬과 함께 살아온 방식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섬이지만, 이곳에는 섬이라는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유한 삶의 질서가 담겨 있습니다. 마라도의 문화는 눈에 띄는 유적이나 형식적인 전통보다,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태도 속에 더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라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공동체가 삶의 기준을 세워 온 과정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마라도의 문화는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섬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 마라도의 문화: 절제와 공존으로 이루진 생활의 방식

마라도의 문화는 특정한 시기나 제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파도가 일상인 섬이라는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해 왔고, 이러한 선택들이 쌓이며 생활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이곳의 삶은 오랫동안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날씨와 파도의 변화는 하루의 리듬을 결정했고, 어업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낚시는 지금도 일상적인 식재료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생활 태도는 검소함과 실용성입니다.

마라도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아직 쓸 수 있는 것은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언제 다시 필요해질지 알 수 없기에 물건 하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습관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는 절약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범이라기보다,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생활 방식입니다.

또한 이 섬에서는 개인의 삶과 공동의 삶이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집과 밭, 길과 마을 공간은 모두 생활의 연장선에 있었고, 한 사람의 선택은 곧 공동체 전체의 흐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먼저 고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마라도에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의 미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불편함의 결과가 아니라, 섬의 환경을 이해하고 존중한 끝에 선택된 삶의 방식이며, 마라도를 마라도답게 만드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이러한 생활 문화는 최근 자연스럽게 환경 친화적 실천과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마라도의 신앙: 바다와 자연 앞에서의 태도

마라도에서 신앙은 제도나 형식보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해 왔습니다. 바다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터전이었지만, 동시에 언제든 위험을 동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했지만, 그보다 먼저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다에 나서기 전의 마음가짐, 계절이 바뀔 때의 조심스러움, 마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던 풍경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해가 바뀌는 날이면, 날씨가 허락하는 한 동바당 앞에 모여 새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은 겸손으로 이어졌고, 이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재 마라도의 신앙적 전통은 과거와 같은 형태로 유지되지는 않지만,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감각은 생활 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마을 환경정비의 날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주민들은 함께 땅에 엎드려 쓰레기를 줍고, 나무를 심으며 섬을 돌봅니다. 이는 선언적인 환경운동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 태도의 연장선에 가깝습니다.

💠 마라도의 공동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다듬어 온 질서

마라도의 공동체는 ‘함께 살아야 했던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섬이라는 공간적 특성은 외부와의 왕래를 제한했고, 이는 주민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마라도에서는 중요한 사안일수록 개인의 판단보다 공동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이상적인 공동체 의식을 내세운 결과라기보다, 갈등을 줄이고 마을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마라도의 공동체 질서는 외부에서 주어진 규칙보다, 생활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조정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 마을의 자치 구조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서 정비되고 있습니다. 급한 결정보다는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공동체 전체의 삶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마라도는 과거와 동일한 모습은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공동체 전체의 삶을 먼저 고려하려는 전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태도는 마라도를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공동의 터전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   삶 속에서 이어지는 문화  

마라도의 문화와 신앙, 공동체는 과거에 머무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섬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은 지금도 사람들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라도의 가치는 규모나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자연과 공존해 온 생활의 지혜, 서로를 배려하며 다듬어 온 공동체의 질서, 그리고 자연 앞에서 겸손했던 태도가 이 섬을 오늘의 마라도로 만들어 왔습니다.

마라도는 섬에서 살아남은 곳이 아니라, 섬과 함께 살아온 방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앞으로도 이 섬이 스스로의 방향을 세워 나가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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